글번호
1930
작성일
2016.09.22
수정일
2016.09.22
작성자
이원주
조회수
325

호주 어학연수 수기 (09학번 안지영)




안녕하세요 저는 응용생물공학과 09학번 안지영입니다.

 

제게 이번 2학년 1학기 한 학기동안 호주로 어학연수를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회를 가지게 된 계기를 먼저 말씀드리자면,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서 학교 홈페이지를 자주 확인 하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거의 매일 공지사항을 체크하다시피 했습니다. 공지란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저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에게 보내졌을 메일을 한 통 받았는데 그 메일의 내용은 호주로 파견학생을 보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땐 무슨 용기와 자신감에 대뜸 그걸 신청해봤지 라는 생각을 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혼자 하는 것은 겁이 나서 친구한테 같이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친구는 거절을 했습니다. 저도 친구의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에 가고는 싶지만 불쑥 용기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일주일 이주일도 아니고 한 달도 아니고 한 학기동안 호주라는 낯선 도시에서 지내고 온다는 게 갓 1학년 마친 저에게는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혼자가기로 결심을 했고 되든 안 되든 신청서류를 내보자는 생각에서 무작정 서류를 제출했는데 연락이 와서 합격했다고 오리엔테이션을 받으러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여차저차 해서 어느덧 3월 22일 출국하는 날. 짧은 준비기간 이었지만 언니오빠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호주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호주에 머무를 도시인 퍼스가 어디인지 UWA대학이 어떠한 곳인지 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하루 이틀 , 일주일을 지내다 보니 호주의 서쪽에 위치하는 Perth는 말로만 듣던 호주의 시드니와 멜번 과는 다른 모습을 보고 실망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겪어보니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낯선 주변 환경 그리고 자칫 지루할 수도 있었던 저의 호주생활을 잘 꾸려나갈 수 있었던 것은 홈스테이 사람들의 작은 배려와 친절, 그리고 함께했던 동아 언니오빠들 덕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제부터 학교생활과 홈스테이에서의 생활에 대해 약간의 말을 해보고자 합니다.

서호주대학 즉, UWA의 본 캠퍼스는 정말 어마어마 하게 컸습니다. 수업을 들으러 강의실을 찾아야하는데 매우 긴 시간이 걸리곤 합니다. 매번 매일 매주 강의실이 바뀌는 터라 항상 긴장해서 일찍 등교를 해야만 지각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에 잠깐잠깐 커피한잔도 하고 수업을 마치면 사람들과 어울려 잔디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고 여유로이 얘기를 즐길 수,..... 많은 없었습니다. 이유는 오후 6시가 넘어가면 한 시간에 한 대씩 오는 버스 덕분이기도 했고 제가 그곳에 머물 무렵이 겨울이 다가오는 시점이어서 빨리 해가 졌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외국에서의 밤거리는 위험해서 늦게 들어가는 것은 홈스테이 가족들에게도 결례가 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저녁때를 맞춰 들어가서 항상 가족들과 함께 하려 노력했습니다. 그 시간이 저에게 있어서는 영어 말하는 능력을 향상시켜줄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실 처음에는 ‘대화’ 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서로의 의사전달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녁식사시간을 통해 그리고 학교 수업시간을 통해 영어 말하는 능력과 듣기 능력을 향상시키려고 나름의 노력을 하고 준비를 한 결과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차츰 들리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알아듣고 말도 할 수 있는 단계까지 올랐습니다. 그렇다고 유창하게 영어표현을 구사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하나 깨우쳐가는 기쁨과 막힘없이 대화를 하면서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대화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과도 더욱 잘 어울릴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디저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인아주머니의 배려로 안 먹어본 과일이 없을 만큼 다양한 종류의 과일도 온갖 디저트를 섭취한 뒤 스스럼없이 아이들과 티비 룸으로 가서 한글이라곤 한 글자도 찾아볼 수 없는 티비를 보거나 함께 얘기를 하며 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매니큐어 칠하기를 좋아하는 막내 딸아이 덕분에 항상 제 손은 알록달록한 매니큐어칠이 되어져있었습니다. 그리고 호주에 갈 때 저는 노트북을 따로 가져가지 않았는데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그 때문에 얘기도 더 할 수 있었고 혼자 생각하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 오히려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터넷 없이 불편하고 답답해서 어떻게 할까 라는 고민도 많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적응되었고 그리고 다행히도 학교에서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잘 마련되어있었기에 큰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학교의 시간표는 아침 일찍부터 오후수업까지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어졌습니다. 화요일과 목요일을 Elective 수업으로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을 1지망 2지망 선택을 해서 듣는 시간이 있었는데 본 수업보다는 이 elective 수업이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비즈니스 스킬이라는 과목을 들었는데 처음에는 수업제목만 보고 면접에 관한 정보를 영어로 익혀두면 좋겠다싶어 선택을 한 거였지만 알고 보니까 마케팅 등과 같은 정말 비즈니스를 배우는 것 이었습니다. 첫 수업은 당황하느라 바빠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매 시간마다 개인에게 영어로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 교수님 덕분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준비를 열심히 해 갔습니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은 오전수업을 마치면 퍼스 곳곳을 excursion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킹스파크 라는 공원도 알게 되었고 스완리버, 스완벨리의 초콜릿공장 와인농장에 가서 시음도 했던 기억에 남을 추억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너무 작은 소도시였기 때문에 달달이 똑같은 곳에 가야만 했던 것이었습니다. 한 달의 마지막 주에는 항상 시험기간이 있었습니다. 배운 것을 토대로 Grammar, Voca, Speaking, Writting, Reading 총 다섯 과목을 쳤습니다. 점수의 총 합산점수가 B+이 나와야 레벨 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건성으로 대한 사람은 아마 한명도 없었을 것입니다. 시험이 끝나고 그 다음주 금요일에는 항상 Graduation이 있었습니다. 이제 이번 텀이 끝나고 자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입니다. 캠퍼스의 소강당 정도쯤 되는 곳에 모두 모여 서로를 축하해주고 격려도 해주는 자리었습니다.

교수님의 말이 마치기가 무섭게 사람들은 밖으로 뛰어나가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강당 앞에 마련된 달콤한 디저트를 위해서입니다. 줄을 서서 먹을 만큼 챙긴 후 잔디에 옹기종기모여 얘기하며 이제 마지막이라며 언제 또 볼 수 있겠냐며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 아마 한 두명이 아닙니다. 이렇게 한텀 한텀 지내면서 쌓아온 인연들을 아직도 소중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기회로 생에 잊지 못 할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한학기동안의 호주생활. 그곳에서 얻은 소중한 인연들, 힘들 때 서로를 도와가며 위로해주던 , 아플 때 혹시나 힘들진 않을까 하며 걱정해주던, 행여 외로움에 허덕이진 않을까 함께 울고 웃어주던 , 그리고 비록 서로의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을 때 도 있었지만 웃고 넘기면서 각기 다른 자신의 자국어의 단어와 발음을 서로에게 알려주고 따라하면서 친해진 많은 사람들이, 그 생활이 아직도 그립고 눈에 선합니다. 솔직히 제가 이 학교를 처음 입학할 때부터 꼭 어떠한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외국을 다녀와야지’ 혹은 ‘교환학생을 꼭 해야지‘ 라고 생각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저는 그때 그저 마냥 처음의 대학생활이 흥미롭고 신기했던 1학년이었지만 우연찮은 기회에 학교의 좋은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것도 많았고 그만큼 생각의 폭이 넓어질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이익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운 거라고 저는 지금 겨울방학 때 또 한번의 여행을 준비 중입니다. 처음에는 호주가는 비행기 타는 것조차 겁에 질려했던 저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집을 떠났고 원래 살아오던 방식에서 벗어나 반년이라는 길면 길고 짧으면 짧았을 생활을 모든 걸 이겨내고 지내왔는데 이제는 두려울 게 없다고 생각됩니다. 뭐든 도전만 하면 다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자신감에서인지 이번 여행은 두렵기보다는 기대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금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학교의 교류 프로그램은 활발히 돌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에 들려 한번쯤은 도전 해 보는 것이 나중에 후회 없는 선택을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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